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어떻게 풍수사상이 전개되었는가 분명치 않다.
다만 우리나라풍수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통일 신라 말기로 추측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음양오행과 방위, 십간 십이지 등이 결합된 풍수는 진나라 때 시작하여 한나라 때에 성행하였고,
당나라 때에 절정을 이룬 것
사상인 것이다. 한민족사를 이끌어 오기 위하여 민족의 지성을 발휘하여 왔고, 지금도 발휘하고 있는 민족지성의 소산이다. 이른바 민족 예지의 총본산으로서의 보고가 곧 한국사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 사상을 대표하는 풍수지리사상, 도가사상, 음양오행론, 유교사상을 조사해 보았다.
풍수지리설은 춘추전국시대에 왕공, 재상들의 부침(浮沈)이 다반사로 이루어짐으로써 그 원인에 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등장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황하(黃河)시대부터 치산치수를 통하여 안락한 인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연을 숭상하는 원시신앙과 음양사상의 영향 아래 자연발생
우리나라 고지도는 근대지리학이 수용되기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초시대적 특성이 발견된다. 그것은 음양오행사상에 바탕을 둔 풍수지리적 관념의 투영이다.
우선, 우리의 국토를 살아있는 인체에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북피아양계만리
풍수지리와 관련한 <명당>이라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당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면 이러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풍수지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풍수지리가 나아가야할 길과 현
우리나라 사람 중 70%는“명당이 따로 있다.”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모두 명당을 찾고 싶어 한다. 풍수가들은 전 국토 중 단지 2%만이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최근까지 남이 잡아 놓은 명당 터에 몰래 밀장, 암장 심지어 묘를 쓸 수 없는 국유지에 암매장하는 경우도 벌어진다. 또 그것을 전
Ⅰ. 서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간에 후보들 중에는 선거를 앞두고 조상의 묘소를 옮겨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풍수지리` 때문이다. 우주를 비행하는 최첨단 시대에 과학이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 예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이 방영된 보도에 의하
풍수지리설의 이론은 자연숭배사상과 땅의 생산능력적인 가치가 결합되어 땅이 인간의 생활에 부여하는 생명력의 판단 기준으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풍수지리설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기본 정책 이론으로 숭상되어 왔고( 태조 왕건의 「훈요10조」에 잘 나타나 있음)
사상적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음도 주목된다.
3.3. 조선시대의 전설
조선전기에는 각 지역의 제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등 지리서가 간행됨에 따라 전설자료들도 광범위하게 조사 정리되면서 대폭적인 문헌정착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조선의 개국을
(4)파자점 설화
파자점을 하는 복술가가 똑같은 글자를 가지고도 짚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는 이야기
〈암행어사와 거지〉·〈이성계와 거지〉·〈수양대군과 김종서〉 등의 이야기가 모두 여기에 속함.
(5)엉터리 점쟁이
<이개구리의 점복>으로 알려진 설화로서 점복에 혹하는 인